이번 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에서는 1993년 일어난 비극적인 여객선 침몰 사고를 다룬다고 합니다. 서해 훼리호는 악천후에도 무리한 기상으로 인해 결국 침몰하게 되었습니다.
1993년 10월 10일은 일요일이었습니다. 날씨가 워낙 좋지 않았기 때문에 운항하지 않을 예정이었지만 다음날 출근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승객들은 출항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또한 서해 훼리호는 수용 인원을 초과하여 362명을 태웠고 짐의 대부분이 선박의 앞쪽에 실려있었다고 합니다.
배에 탄 사람들 중에는 위도면의 주민들, 군 장교, 단합대회를 한 직장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결국 악천후에 무리하게 승객을 태운 배는 침몰하게 되고, 배에 있던 362명 중 292명이 사망하는 대참사로 이어지게 됩니다.
유가족 두 번 울린 서해훼리호 오보 사건
선장이 혼자 탈출해서 집으로 갔다?
선장이 몰래 일본으로 밀항했다?
서해 훼리호 침몰 당시 한 목격자는 선장이 혼자 탈출하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말하게 됩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선장이 혼자 밀항을 했다더라, 승무원 3명이 생존했다 등등 수많은 오보가 일파만파 퍼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선장의 도주설과 생존설은 모두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서해 훼리호의 승무원과 선장은 무선통신실 안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습니다. 서해 훼리호의 백운두 선장은 마지막까지 승객을 살리기 위해 구조 요청을 하려고 했었던 것입니다. 결국 오보를 다룬 언론사들은 사과문을 올렸지만 유가족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습니다. 오보로 인해 전 국민의 비난을 받아야 했던 선장의 유가족들은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요.
백운두 선장의 생존설은 알고보니 백운두 선장과 닮은 사람을 보고 착각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유가 어찌되었든 생존설, 도주설은 유가족들에게 큰 상처를 주었고 마지막까지 승객을 지키려고 한 선장과 승무원들을 두 번 죽인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서해 훼리호 침몰 사건을 다룬 편은 11월 4일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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