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5 [꼬꼬무 3 알라딘 램프와 땅콩] 베트남전 국군포로 안학수 하사 납북 사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3 - 알라딘 램프와 땅콩 방송일자: 2022년 3월 31일 이번 방송은 베트남전에 파병되었다가 납북된 고 안학수 하사의 이야기가 그려질 예정입니다. 국군 포로 1호인 안학수 하사는 월북자라는 낙인이 찍히며 그의 가족들은 수십 년의 세월 동안 빨갱이라는 누명을 쓰고 살아야 했던 가슴 아픈 사연입니다. 베트남전에 파병된 안학수 하사가 북한으로 간 진짜 이유 때는 1966년이었습니다. 안학수 하사는 베트남전에 파병되었고 9월 16일은 안학수 하사의 귀국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정된 귀국일이 지나도 안학수 하사는 돌아오지 않았고 가족들은 그저 기도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그로부터 6개월이 흐른 후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됩니다. 김일성 수령님의 따뜻한 품에 안겨서 무한히 행복합니다. 안.. 2022. 3. 31. 꼬꼬무 시즌3 16회 1992년 LA 폭동 아메리칸드림 로드니 킹 사건 이번 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 아메리칸드림 1992년 LA 폭동 2월 3일 방송되는 '꼬꼬무 시즌3' 16화에서는 1992년 일어난 LA폭동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다고 합니다. 이제는 벌써 30년 전 이야기가 된 이야기네요. 일명 LA폭동이라 불리는 이 사건의 발단부터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로드니 킹 사건 LA 폭동 +한인사회의 피해 미국 경찰들은 어디에? 로드니 킹 사건 1991년 경찰은 과속하고 있는 한 차량을 잡아 세우게 되는데요. 당시 차를 운전하고 있었던 사람은 로드니 킹이라는 흑인이었습니다. 경찰들은 체포하는 과정에서 로드니 킹에게 폭력을 가했는데요. 당시 한 주민이 이 과정을 비디오로 찍게 되고 이 영상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재판이 열리게 됩니다. 그러나 경찰들은 과잉 진압에 .. 2022. 2. 3. 꼬꼬무 시즌3 13회 1954 출격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스위스 월드컵 축구 한일전 이번 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방송일자: 2022년 1월 13일 광복 이후 해방을 맞은 대한민국. 그러나 1950년대 북한군이 침공하면서 한국전쟁이 일어났고 53년도에 휴전이 이루어졌는데요. 때는 1954년 1월이었습니다. 전쟁 이후 폐허가 된 거리에 웬 건장한 체격의 사내들이 모이기 시작했는데요. 스무 명의 사내들의 목표는 단 하나! 이들은 특수 정예 요원으로 최초이자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출격.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 축구 한일전 예선. 사실 스포츠 경기 중에서도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는 경기는 아마 한일전이 아닐까 싶은데요. 1984년도에 스위스 월드컵. 1954년 스위스 월드컵 예선에서 최초의 한일전 경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과연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1954년 당시의 한국은 가난에 .. 2022. 1. 13. 꼬꼬무 시즌3 독립운동가 김상옥 종로경찰서 폭탄 투척 동대문 홍길동 이번 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에서는 순국선열의 날을 맞이하여 독립운동가 김상옥 의사에 대한 에피소드를 다룬다고 합니다! 김상옥 의사 그는 누구인가? 1889년에 태어난 김상옥 의사는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당시 직원이 50명에 이르는 회사를 운영할 정도로 성공하게 됩니다. 굉장히 잘 나가는 청년사업가였던 김상옥 의사는 그때 그 시절 체인점을 열 정도로 사업이 번창했다고 하는데요. 명예와 부를 가진 김상옥의 또 다른 이름은 바로 독립운동가였습니다. 지붕 위를 날아다니며 신출귀몰한 김상옥 의사에게 동대문 홍길동이라는 별명이 붙게 됩니다. 김상옥 의사의 쌍권총 실력 또한 유명했는데요. 김상옥 의사는 3.1 운동 이후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을 하는 일에 가담하게 되면서 비밀 결사를 조직하게 됩니다. 김.. 2021. 11. 17. 꼬꼬무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 백운두 선장 유가족 울린 오보 사건 이번 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에서는 1993년 일어난 비극적인 여객선 침몰 사고를 다룬다고 합니다. 서해 훼리호는 악천후에도 무리한 기상으로 인해 결국 침몰하게 되었습니다. 1993년 10월 10일은 일요일이었습니다. 날씨가 워낙 좋지 않았기 때문에 운항하지 않을 예정이었지만 다음날 출근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승객들은 출항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또한 서해 훼리호는 수용 인원을 초과하여 362명을 태웠고 짐의 대부분이 선박의 앞쪽에 실려있었다고 합니다. 배에 탄 사람들 중에는 위도면의 주민들, 군 장교, 단합대회를 한 직장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결국 악천후에 무리하게 승객을 태운 배는 침몰하게 되고, 배에 있던 362명 중 292명이 사망하는 대참사로 이어지게 됩니다. 유가.. 2021. 11. 2. 이전 1 다음 반응형